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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레터 부룬디 단기선교 간증 [이상길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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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소록밀알회
댓글 0건 조회 491회 작성일 16-10-06 1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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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자 보험을 신청 하기위해 여러 경로를 통해 알아보았지만 한결같은 대답이 왔다.

그곳은 외교부에서 철수 권고지역이므로 여행을 할 수 없고 따라서 여행자 보험도 안 된다는 것이었다.

작년에 대통령임기가 끝났음에도 헌법을 개정하여 임기를 연장하자 내란이 일어났고 그 후에도 계속적으로 테러가 일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2016년 9월 12일 인천공항을 출발하여 태국 방콕과 이디오피아 아디스아바바 그리고 르완다 키갈리공항을 거쳐 27시간 만에 마침내 부룬디의 수도인 부줌부라 공항에 도착하였다.


국제공항은 마치 한국 시골의 시외버스 대합실만큼 이나 작았다. 이용객도 별로 없었지만 그 곳에서 입국비자를 발급받고 비자피를 지불하고 영수증을 받아 나오는데 까지 40분 가량이 걸렸다.


공항을 나와 봉고차 지붕에 우리 짐들을 싣고 수도 부줌부라시를 빠져나오는 동안 소총으로 무장한 경찰들이 총탄을 장전한 채 우리 차량을 세우고 수시로 검문했다.


부룬디는 정치적 불안감 때문에 이미 외국 NGO들도 대부분 철수한 상태이고 외국 선교사들도 계속 철수하고 있다고 했다.

 현재 한국인 선교사는 4가정이 사역을 하고 계셨다.


우리는 동남쪽으로 4시간을 달려서 어두운 저녁 7시가 되어 마침내 선교센타(World Join Us Mission Center)가 있는 루타나 무제마을에 도착했다.


가로등도 없는 어두운길을 시속80km의 속도로 달리는 공포(?)에 심신이 지쳐있던 우리 일행은 선교 센타에 들어서는 순간 우리 차량을 맞이하는 청년들과 어린이들의 환영 노래에 깊은 안도의 숨을 몰아쉬었다.


그들은 언제부터 인지는 몰라도 우리가 오기를 기다리며 어두운 센타 앞마당을 지키고 있었다. 가방을 정리하고 다같이 모여 저녁 식사 후 서로를 소개하며 내일 일정을 의논하고 통성으로 기도를 했다.


이제 씻고 잘 시간인데, 아뿔사! 물이 안 나온다. 남자들은 그나마 견디겠지만 여자대원들이 걱정 되었다.

다행히 받아놓은 물로 고양이 세수를 하고 피곤한 몸을 침대에 던졌다.


수탉의 울음소리에 이른 새벽 잠을 깼다.


5시 30분, 예배당에서는 벌써부터 마을 청년들과 가족들이 모여서 찬양을 부르고 있었다.

어느덧 우리 대원들도 모두 나와 함께 찬양을 부르는데 모두 일어서서 찬양하다가 어느 순간 모두 앞으로 나와 좌우로 행진하며 박수치며 찬양을 한다.

생전 처음 해보는 새벽예배 스타일이었는데 모두들 잘 따라했다.


한국에서는 새벽에 일어나서 춤추며 찬양한다는 일이 이상한 일 일 텐데 이곳에서는 아무도 이상해 보이지 않는다.

예배가 끝나고는 앞마당에 모여서 원을 그리며 또 다시 찬양을 부른다.


힘차게 박수치며 원을 따라 돌다가 갑자기 누군가 반대방향으로 돌면 모두가 방향을 바꿔 돌며 찬양을 부른다.


주방팀들이 한국에서 가져온 재료들로 맛있게 아침식사를 준비했다 새벽부터 뛰었던 탓인지 평소보다 두배는 많이 밥을 먹었다.


첫날 사역은 어린이 사역을 중심으로 진행하며 물리 치료와 통증, 창상 치료실을 운영했다.


우리는 어린이 사역에 전체 인원 200명 정도를 예상하고, 오전에는 미취학아동 100명, 오후에 학교를 마친 학생 100명 정도에 맞추어 준비 했는데, 그런 기대는 처음부터 어긋나갔다.

오전에 예배당에 들어간 아이들만 이미 400명에 예배당에 못 들어오고 문밖에 있는 아이들도 100명 가량이 되었다.

신응남선교사님은 막대기를 들고 다니며 아이들은 정리하고 있었고, 급기야 문밖에서는 들어오려는 아이들과 문을 막으려는 사람들이 서로 밀치며 힘겨루기를 하게 되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학교가 방학중이라서 마을의 모든 어린이들이 교회로 몰려온 것이었다.


박철홍목사님과 임성택목사님 한향자선교사님은 혼신을 다해 어린이들에게 찬양노래를 가르치고, 박수게임을 가르치고, 율동을 가르쳤다.

한국에서부터 부룬디 어린이들을 가슴에 품고, 부룬디어로 노래를 연습하며, 뻣뻣한 몸으로 잠도 안자고 율동을 연습하고, 기도로 사역을 준비해온 터였기에 가능했다.


오전에 3시간 가량 진행된 어린이사역은 그야말로 60년대 한국의 여름성경학교를 옮겨다 놓은 듯했다.


오후에는 한국에서 가져간 프로구단 축구공을 가지고 축구를 하는데 황병은 집사님과 수백명의 어린이들이 공 하나에 몰려다니고 있었다.

 한쪽에서는 피구공으로 임성택목사님과 한향자선교사님이 여자아이들에게 피구를 가르쳐주는데 오전사역으로 이미 반쯤 쉬어버린 목소리를 가지고 소리치며 경기규칙을 설명하고 이해시키는데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점심시간에도 대부분의 어린아이들은 집에 가지 않고 아무것도 먹지 않은채 센타에 머물러 있었다.

이때 누구도 기대치 않았던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마치 예수님이 물고기 2마리와 떡 5개로 배고픈 사람들을 먹이셨듯이 염부용집사님이 한국에서 가져온 프로틴 영양식 분말을 물에 타서 수백명의 어린아이들을 먹이게 된 것이다.

그것도 질서 정연하게 한 줄로 줄을 서서 빠짐없이 모두 먹게 되었다.


한편, 치료실에서는 물리치료를 받으러온 환자들과 통증치료환자, 창상환자가 끈임없이 몰려와서 좀처럼 쉴 틈이 없었다.

이근희 목사님은 얼굴과 몸에 난 점과 사마귀를 쑥뜸으로 빼주면서, 동시에 저주파 치료기 4쎄트를 열어놓고 4명씩 환자를 받으며 치료를 해주었다.


장영진박사님은 어두운 전등 아래 렌턴으로 불을 비추면서, 검은 피부에 감춰진 흐릿한 혈관을 찾아가며 한손으로 환자의 손을 잡고 한 손으로 주사수액을 놓고 있었다.

커다란 가방에 가득히 많던 영양주사는 첫날 저녁에 이미 바닥 나 벼렸다.


이튿날은 새벽예배를 끝내자마자 무제마을에서 차로 1시간가량 떨어진 루바호마을로 사역을 떠나게 되었다.

12인승 봉고차의 씨트를 뜯어내어 15인승으로 개조한 차에 18명의 성인이 몸을 싣고 울퉁불퉁한 비포장도로를 1시간 달려 마침내 루바호 마을에 도착했다.


우리는 천정이 반쯤 덮여있는 아직 공사중인 페가보교회에 자리를 잡았다. 어린이 사역 팀은 마을 서편에 떨어진 EGLISE 감리교회에서 어제처럼 어린이들을 모아놓고 천국잔치를 열었다.

한국에서 가져간 작은 악기 ‘카주’는 음악성이 뛰어난 부룬디 어린이들이 배우는데는 단 10초도 걸리지 않았다.


우리가 가져간 사탕과 풍선과 선물들은 오전에 이미 바닥이 났고, 오후에는 소문을 듣고 수많은 아이들이 몰려와 어린이 사역팀은 그야말로 질식해서 쓰러지기 직전이었다.


이와 같은 사태는 의료 진료팀도 마찬가지였다. 


처음에는 교회 담장밖에 사람들을 세우고 번호표를 나눠주고는 30명씩 들여보내서 의자에 앉히고, 순번대로 검진을 받아 혈압과 혈당을 재고 자기가 해당하는 부서로 가서 진료와 처방을 받고 약국에서 약을 타는 순서대로 잘 되는 듯했다.

 하지만 갑자기 내리는 소낙비로 인해 그 대열은 한꺼번에 무너졌다.


담장밖에 기다리던 사람들이 안으로 밀고 들어와 먼저 순서를 기다리던 사람들과 한데 엉켜 검진을 받는 테이블 앞까지 밀려온 것이다. 순식간에 진료소는 아수라장이 되었다.

번호를 부르는 사람과 먼저 진료를 받겠다고 밀치는 사람, 질서를 잡으려고 막대기로 내리치는 경찰들... 이 모든 사람들이 한데 엉켜 마치 전쟁을 치루고 있었다.


그러는 동안 한편에서는 한센인들에게 식사를 대접하기위해 음식을 준비하고 있었다.

문제는 부룬디의 부엌구조이다. 대부분 부엌이 따로 부뚜막도 없고 실내 옆방에다 화덕을 마련해놓고는 나무에 불을 지펴서 요리를 하고 있었는데 굴뚝이 없어 연기가 집안에 자욱한 상태이어서 우리는 단 10초도 숨을 쉴 수 없었다.

그곳에서 부룬디 여인들이 온종일 요리를 하다 보니 대부분 심장 질환과 머리 통증 그리고 시력 감퇴로 고통 받고 있었다.


게다가 음식이라고 해봐야 콩을 끓여 밥에 얹어 먹는 게 전부인 까닭에 영양 불균형으로 면역력이 약하고, 질병에 쉽게 노출되어 있었다.

의료혜택도 받을 수 없는 형편이라서 초기에 치료하면 나을 수 있는 병들을 치료 못해서 악화되거나 불구가 된 경우가 많았다.


우리는 그 마을에서도 가장 형편이 어려운 한센인들에게 염소고기를 대접해 드렸다.

그들에게는 부족한 영양을 섭취할 수있는 최고의 음식이었다.


선교사님 내외는 한센인들을 만날 때 마다 교통비를 나눠 주셨는데 그들은 그 받은 돈을 아끼기위해  버스를 타지 않고 1시간씩 걸어서 돌아간다고 한다.


사역 셋째날 새벽, 무제마을에서는 닭 울음보다 창밖에서 들리는 웅성거리는 소리에 잠을 깼다.

눈을 비비고 나가보니 새벽 4시 반부터 100명이 넘는 주민들이 진료를 받기위해 줄을 지어 앉아 있었다. 그동안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이런 일은 찾아볼 수 없었기에 한편 당혹스러웠다.


저들은 진료가 9시부터 라는 걸 알면서도 아침도 굶을 각오로 새벽부터 나와 있단 말인가?  일단은 번호표를 나눠주고 모두 예배당으로 들어가서 새벽예배를 드리게 했다.


배형석집사님은 어린아이들을 보면서 한국에서 어렸을때 드렸던 자신의 어린 모습이 떠올라 계속 눈물을 훔치고 있었다.


새벽예배가 끝나자 인원은 이미 400명을 넘어섰다. 문제는 번호표를 받은 사람들을 어떻게 한 줄로 질서있게 줄을 세우느냐 하는 것이었다 게다가 예배가 끝나고 나중에 온 사람들도 역시 400명가량 되어보였다.


어제 루바호마을에서 무질서와의 전쟁을 치뤘던 터라 오늘은 질서를 잡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는 걸 직감했다. 우선 스텝들에게 지시하여 아직 표를 받지 못한 분들은 운동장에 한 줄로 서도록 하게 했다.

그리고 표를 받은 사람들은 진료소 앞 교회 뜰에 지그재그로 공항 줄처럼 줄을 서게 했다. 하지만 공항에 가본적도 없고 평생 그런 줄을 서 본 적이 없는 터라, 1번부터 400번까지 불러가며 줄을 세우는데만 2시간이 넘게 걸렸다.


그나마 질서있게 앉혀놓고 순서대로 진행되는 듯하다가, 뜨거운 햇빛 탓에 접수 테이블이 교회 안으로 이동하게되자 순식간에 교회 앞은 갑자기 밀려든 사람들로 인해 아수라장이 되었다.

신인환 선교사님은 출구와 입구가 완전히 막혀 버린 상태에서 이들을 정리하다가 탈진상태로 다리가 마비되어 주저앉게 되었고, 우리는 또다시 줄을 세우기 위해 전쟁을 치러야만 했다.


이번 사역에는 무엇보다도 의사소통에 어려움이 많았다.


중국이나 필리핀에서는 한국말을 하는 조선족이나 유학생들이 통역을 도왔는데, 부룬디에서는 영어로만 중간통역이 되었고 그나마 통역 봉사자도 인원이 부족해서 사역이 힘들었다.


약국에서는 황사바람이 부는 최악의 환경 속에서 도우미도 없이 신미경 간호사가 쉴틈없이 1인 3역을 감당해야했다.

허진숙박사는 고가의 초음파검진기를 가져갔지만 전기가 나가서 쓸 수 없어 안타까운 마음으로 발을 굴려야 했다.


주방 팀도 냉장고 전기가 나가고 물도 나오지 않아 대원들 식사는 물론 저녁에 대접하기로 한 마을지도자와 경노잔치도 준비하는데 어려움을 겪었다.


그나마 오후 늦게 군수님이 방문하셔서 진료를 받으시고 흡족한 마음에 누군가에게 전화해주신 덕분에 전기가 들어오게 되었고, 저녁 만찬 때 오신 수도국장님이 지시를 하자 처음으로 수도꼭지에서 물이 콸콸 나오게 되었다.


그 와중에도 루타나 보건소에서 현지인 간호학생들 4명이 와서 한국의 의술을 적극적으로 배우며 조민영 간호사를 도와 수액 놓는 일을 하게 되었다.

이 모든 일들이 되어진 걸 보니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우리를 지켜보시며 일하시는 걸 알게 되었다.


사역 3째날 의료팀 6명을 먼저 한국으로 보내고, 나머지 11명은 루바호 마을에서 열리는 7개 교회 연합 부흥회에 참석하기위해 택시를 나눠 탔다.


택시는 한국에서는 폐차장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낡은 차였다. 짐작대로 가던 도중에 타이어가 펑크났다. 더운 날씨에 차를 세우고 예비 타이어로 갈아 끼우는 동안 아무도 짜증내는 사람이 없었다.

가다가 또다시 펑크가 나면 이젠 예비타이어도 없어서 어쩌나하는 걱정이 되었지만, 그냥 하늘에 맡기기로 했다.


이틀 전 우리가 의료진료를 하면서 황토 먼지를 뒤집어쓰던 페가보교회 바닥에는 물이 흠뻑 뿌려져있었는데 그 이유를 아는데는 시간이 얼마 걸리지 않았다.


순서에 따라 한 교회씩 성도들이 가운데로 나와서 찬양을 부르는데, 복장도 어느 정도 맞춰 입었고 정렬된 모습으로 몸을 움직이며 찬양하는 모습은 새삼 진지하고, 부르는 찬양 목소리는 우리의 가슴과 예배당 천정을 울렸다.


저들의 절제된 율동과 일사불란한 행동에서 지난 며칠간 우리가 격었던 무질서와 혼란은 찾아볼 수 없었다. 그들은 원래 질서가 없는 민족이 아니었다.

그냥 번호표 순서를 기다리다간 도무지 자기 차례가 오지 않을 것 같기에 평생 한번 뿐일 지도 모르는 순서를 놓치고 싶지 않아서 그와 같은 전쟁을 치뤘던 것이었다.

 결국 우리는 그 많은 번호표를 나눠주고 그 중 절반도 진료를 해주지 못했다. 너무도 가슴이 아팠다.


오는 길에 한센인 환우의 집을 방문 했는데 그들은 평안한 얼굴로 웃으며 우리를 맞이했다.  

 아마호~로!   불편한 몸으로 흙을 파서 벽돌을 만들어 집을 지었고, 선교사님이 사주신 자전거로 생활을 하며 힘든 내색을 하지 않고 살고 있었다.


 집에는 가재도구랄 게 하나도 없고, 먹는것도 삶는 콩 외에는 없었다.

게다가 아내는 3일전 아기를 낳고 뭔가 잘못되어 몸이 아팠지만 우리가 함께 기도를 해주자 찬양으로 화답을 한다.

이 분들이 믿음으로 승리해서 소록도처럼 믿음의 승리자가 될 뿐 아니라, 자녀들 또한 소록도의 자녀들처럼 축복받은 인물들이 되길 기도한다.


아프리카 선교는 오가는 시간이 길고, 준비하는데 어려움이 있고, 사역이 힘든게 사실이다. 하지만 우리가 계획한 대로 다 하지 못하더라도 하나님의 마음을 볼 수 있는 곳이었다.


130년전 가난과 질병으로 뒤덮힌 척박한 조선땅에 외국인 선교사들이 위험을 무릎쓰고 왔듯이, 우리는 복음의 빚진 자들로서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사람들을 기억하며 그들을 위해 기도하며, 또 다시 부르시면 순종할 것이다.


아프리카 신인환 선교사님이 말씀이 떠오른다. “저는 날마다 죽음을 생각합니다 언제든 하나님이 부르시면 가야죠. 여기까지 하나님이 일하셨다고 고백합니다.”


“아프리카의 심장 부룬디를 예수의 심장으로 뛰게하라!”


ps. 날마다 영적전쟁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 환경을 보지 말고 환경속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보며 승리하길 바랍니다.


2016년 9월 27일   이상길 장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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