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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지순례

성지순례를 다녀와서

나의 소록도 방문기(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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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포동이
댓글 0건 조회 1,567회 작성일 14-01-07 1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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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기도를 끝내고 돌아와서는 회원들의 아침 식사 준비에 바빴습니다.
이양길 권사님의 지휘(?)로 이상길 회장님 부부, 정문호 집사님, 김복희 권사님, 그 외 여러분들 (제가 성함을 다 기억을 못해서 죄송..^^;;;) 모두 바쁜 손길로 봉사를 하고 계셨습니다. 여러가지 부족한 가운데서도 정말 풍성하게 음식이 채워졌습니다.
저도 열심히 소고기를 볶느라 사진을 찍지는 못했습니다...
 
아침 메뉴는 밥도 흰밥, 잡곡밥의 두 종류에다 소록도에서 직접 구입한 키조개가 들어간 미역국, 훌륭한 소고기 불고기, 고추, 상추, 깻잎쌈, 김, 김복희 권사님이 직접 담그신 김치까지 너무나도 푸짐한 밥상이었습니다.
아침에 이렇게 기름이 좔좔 흐르는 풍성한 밥을 먹어본 적은 거의 없었던 것 같습니다.
 
설겆이도 다같이 힘을 모아 후다닥... 이날 9조에 해당되신 분들이 모두 봉사하셨습니다.
밀알회 회원 30여명에 나중 점심 배식 약 150명 정도를 다 감당하셨으니 정말 많이 힘드셨을텐데 누구하나 힘든 기색없이 웃음으로 봉사하셨습니다.
 
아침을 먹은 후 가가호호 방문을 위해 먼저 새마을 센터에 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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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마을회관을 향하고 있는데 하늘에서 태양이 떠오르더군요... 정말 오래간만에 보는 일출이었습니다.
공기도 너무 맑아서 그런지 떠오르는 태양은 눈부시도록 아름다왔습니다.
 
새마을회관은 거동이 불편하신 분들이나 한센병으로 시력을 잃으신 분들이 모이신 곳이라고 하셨습니다. 공동 주택의 개념인데 제가 방문한 곳은 신생리 일반 주거지역이라 이날 새마을회관을 둘러보지는 못했습니다.
그러나 새마을회관에 들어서자 김또숙 집사님께서 우리를 반갑게 맞아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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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또숙 집사님 또한 시력장애를 가지고 계셨습니다. 우리의 말 하나하나에 할렐루야!를 외치시던 그 모습은 감동이었습니다. 유명한 성악가 같은 발성으로 뱃속 깊숙한 곳에서 우러나오는 할렐루야는 정말 힘이 있었습니다.
순간 제 모습이 보이더군요. 내가 할렐루야를 얼마나 외쳤던가... 하나님을 얼마다 찬양했던가...
흔히 우리는 "아멘"을 많이 외칩니다. 물론 "아멘"이라는 말이 대단한 말이기는 하지만 이 "아멘"을 개인적인 욕심으로 이용하지 않았나 싶었습니다.
 
주여 건강 주시옵소서, 아멘... 물질의 풍요를 더하옵소서, 아멘... 화목하게 해주시옵소서, 아멘... 이렇게 저렇게 해주시옵소서, 아멘을 외치지는 않았나... 깊은 생각에 빠졌습니다.
인간의 존재이유는 하나님 찬양이 먼저인데 할렐루야를 외치기 보다는 육신의 안위와 평안을 구하는 목소리만 높인 것이 아닌지 스스로 묻게되는 시간이었습니다. 
 
정말 저분들이야 말로 "너무 아픕니다 주여, 도와주시옵소서, 아멘"을 외쳐야됨에도 하나같이 육신의 안위보다는 오직 하나님 찬양을 외치고 계셨습니다. 제 믿음이 얼마나 어린아이와 같았나 돌이켜 보게 되었습니다.
 
새마을 센터에서 김또숙 집사님과 기도와 찬양의 시간을 가진 후 각 조별로 가가호호 방문을 하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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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희 조는 저를 포함하여 세명으로 구성되었으며 다섯집을 방문하였습니다. 집은 전부 공동주택의 형태로 되어 있었고 7-1, 7-2.... 8-1, 8-2 이런 형태로 구성되어 있으며 각 집에는 이름표가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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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은 거의 이런 식으로 비슷비슷한 공동 주택이며 각 집앞에 화단을 가꾸신 곳도 있고, 해조류 등을 널어 말리기도 하고 고추나 마늘 등이 있는 곳도 있었습니다.
집 내부는 혹시라도 그 분들이 맘 상해 하실까봐 찍지는 않았습니다.
 
저희 조가 방문한 집은 3가정은 부부가 사셨고 2가정은 할머님 혼자서 각각 사셨습니다.
사실 여기서 저는 약간 혼란을 겪었습니다. 지금 소록도의 일이기는 한데 소록도에는 두 부류의 한센인이 계셨습니다.
약 40~50년대 이전에 오신 분들은 이곳에서 너무나도 큰 고통속에서 울부짖으며 사셨고 그 이후에 오신 분들은 몇년간 병을 치료받고 외부에서 사시다가 오신지 1~2년 정도 되신 분들이셨습니다.
 
이곳에서 계속 사신 분들은 일제시대 부터 고통속에서 피눈물을 흘리며 사신 분들이셨습니다. 그 분들이 의지할 곳은 오직 주님밖에 없었으며, 피눈물 흘리며 고통속에서 오직 주님만을 바라보고 살아오신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여기서 몇년간 치료를 받다가 외부에서 살다가 다시 오신 분들은 사실 한센인의 혜택을 받기 위해 오신 것 같았습니다. 세 부부를 만났었는데 그 중 두 부부는 한분이 한센인이 아니셨습니다.
 
다들 수원, 일산 등지에 집을 가지고 계셨고 여기가 워낙 혜택도 좋고 공기도 좋다보니 오신 것 같았습니다.
생활도 어느 정도 풍족해 보이셨고, 그냥 우리들 모습과 별반 달라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제가 만난 이란이 할머님은 달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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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 보았던 세로글 성경... 옆은 빨간색으로 칠해진 성경이었습니다. 낡은 소반에 올려져서 항상 보고 계신지 돋보기가 놓여져 있었습니다. 하루종일 기도와 성경말씀으로 사신다고 하셨습니다.
 
정말 은색으로 덮은 아름다운 머리에 얼굴이 동글동글한 귀여운(?) 할머니셨습니다.
다리가 불편하셔서 거동이 쉽지는 않으시지만 시종일관 소녀의 미소를 보이시는 분이셨습니다.
 
22세에 발병하셨다고 하셨습니다. 그때 결혼을 하셔서 100일된 아기가 있었는데 업고 소록도에 들어오셨답니다.
거기서 아이를 여기서 키울 수 없으니 밖에 녹동 어느 곳에 가서 버리고 오라고 하셨답니다. 내 살자고 딸을 버려둘 수가 없어서 죽으면 죽었지 못한다고 버티셨답니다. 그렇게 아이를 2년간 돌보셨는데 강제로 보육원에 보내졌다고 합니다.
 
그곳은 천주교재단 보육원이었는데 도무지 그곳은 아닌 것 같았답니다. 아마 하나님을 제대로 바라보지 않는다는 생각이 크셨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거기서 데리고 나와서 친척집에 맡겼는데 정말 배도 곯고 힘들게 여기저기 친척집을 전전하셨다고 합니다. 아이 혼자 참으로 고통을 당한 것이지요..
 
물론 할머님도 여기서 무지무지 고생을 하셨답니다. 고문 받기 싫어서 도망가다가 잡히고, 도무지 힘들어서 목숨을 버리는 사람을 여럿 봤다고 하셨습니다. 아이의 걱정으로 밤낮 피눈물로 사셨다고 합니다.
할머님은 많이 우셨는데 그러나 이날 할머님의 말은 저에게 깊은 감동이었습니다.
 
"나는 기도밖에 할 수 없었거든요... 내가 키울 수 없으니까 걔는 하나님이 키우셨어요... 난 해준게 하나도 없는데 오직 기도만이 나에게 전부였어요... 내가 키운게 아니라 하나님이 키우셨어요... 지금은 시집가서 애도 낳고 잘 살아요..."
 
그랬습니다. 제가 아무리 발버둥쳐도 제 딸의 키를 늘일 수 없고... 제 딸을 제 생각대로 키울 수 없는 것입니다.
생각해보면 때마다 주님께서 함께 하셨는데 그건 자꾸 잊어버리고 제 손으로 키우고자 아둥바둥 했었습니다.
환경이 어렵고 힘들어지면 주변 사람들을 원망하고 왜 안되는지 하나님을 원망하며 살았던 것 같습니다.
주께서는 오늘도 우리 딸을 예쁘게 잘 키워주고 계신데 너무 인간적으로 키웠던 것 같습니다. 제 딸은 제가 키우는 것이 아닌 바로 하나님께서 키우셨던 것을 제가 잠시나마 잊고 살았던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란이 할머님은 딸 이야기 할때는 슬퍼하셨지만... 다시 하늘의 소망을 얘기할 때는 영락없이 귀여운 소녀로 돌아가셨습니다. 이제는 하나님 나라에 갈 때만 기다리고 있노라고...
 
제가 과연 저 말을 할 수 있을까요... 오늘 갑자기 하나님이 부르시면 저렇게 환한 모습으로 갈 수 있을까요...
죄악된 세상에 몸 담구며 살지 않았다고 할 수 있을까요... 부끄럽지 않게 하나님을 따라 갈 수 있을까요... 저 환한 표정이 제 것이 될 수 있을까요... 자신이 없었습니다.
 
가가호호 방문하면서 제가 느낀 것은 지금의 행복이 지금의 믿음이 물질에 있지 않다는 것이었습니다.
오히려 외부에 나가셔서 생활을 누릴만큼 누리신 분들에게서는 그런 천상의 미소를 볼 수 없었습니다. 그런 평안함을 볼 수 없었습니다. 오히려 오직 하나님만을 의지하는 삶을 살아오신 분들에게서만 그런 모습을 뵐 수 있었습니다.
참으로 반성을 많이 하게되는 시간이었습니다.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하지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먹을 것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로다 (하박국 3:17~18)
그렇습니다.. 아무것도 없을찌라도 하나님을 만난 그 분들에게는 천상의 기쁨이 있었습니다.
처음 차를 타고 오면서 말씀하신 찌라도의 하나님은 이곳에 계셨습니다. 그 분을 만나뵌 사람들의 기쁨과 평안을 보았습니다. 참으로 은혜로운 시간이었습니다.
 
가가호호 방문을 마치고 돌아오니 10시 30분... 이곳은 아침을 일찍 시작하는 관계로 그 시간이 점심시간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저희 조는 늦게 도착해서 이미 점심 떡국 배식이 끝난 다음이었습니다.
 
떡국은 참 맛있었습니다. 그 분들은 떡국을 드시기 힘드신데 이런날 떡국을 대접해 드리니 저도 기뻤습니다. 왕만두는 얼마나 큰지 제 주먹만했습니다. 다들 준비하신 손길들이 대단하셨습니다.
 
가가호호 방문 후 은혜받은 내용들을 삼삼오오 나누며 풍성한 시간을 가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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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머물렀던 숙소 전경]
-----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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