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려운 가운데서도 믿음을 간직한 소록도를 방문합니다.

성지순례

성지순례를 다녀와서

나의 소록도 방문기(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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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포동이
댓글 1건 조회 1,634회 작성일 14-01-06 1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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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소록도의 일정을 가감없이 쭉 써내려 가고자 합니다.
그냥 제가 다녀온 곳을 쭉 한번 더 훑어 보고자 합니다.
그래서 그 날의 은혜로움을 다시 한번 되새기고자 합니다.
함께 하셨던 분들도 함께 하지 못하셨던 분들도 그날의 은혜에 동참하시기를 바랍니다.
 
간사라는 책임을 갑자기 맡고 아무 사전 지식이 없는 관계로 그냥 멀뚱멀뚱 가방에 칫솔, 치약만 들고는
그냥 무작정 지하철을 탔습니다.
1월 3일 오후 7시 방배역 1번출구... 일산에서 출발한 관계로 정말 한참을 이동했습니다.
1번 출구 SK 주유소 앞이라는 글자를 못보고서는 그저 1번 출구에 서있다가 전화 통화 후
SK 주유소 앞으로 가니 그 보다 조금 위쪽에 소록 밀알회 글자가 깜빡이는 꽤 훌륭한 관광버스가 있었습니다.
 
임원분들은 회의할 때 잠시 잠깐 뵌 관계로 그냥 인사만 하고 무작정 자리 잡고 앉았습니다.
암튼 계속 멀뚱멀뚱... 이 날의 제 컨셉은 멀뚱~~^^;;;
 
자주 뵈온 분들이 많은 관계로 저마다 인사하느라 바쁘셨고 하하 호호 웃음 소리가 끊이지 않고
모두들 봉사하러 가신다는 마음 보다는 그분들을 뵈러 가는 것 자체에 기쁨을 두시며 약간은 흥분된 마음으로
기대를 하는 것 같았습니다.
 
다들 조그마한 가방을 들고 계셨었는데 나중에 알고보니 잠시 잠을 잘 수 있는 시간이 있어서
그때 갈아입을 옷과 세면도구, 화장품 등이 있는 것 같았습니다.
저는 전혀 잠을 안자는 줄 알고 그냥 칫솔과 치약만.... 에그그...ㅡ.ㅡ;;;
 
차에 타서 움직이니 김밥, 음료수, 간식, 물... 정말 너무나도 풍성하게 주시더군요...
그러다가 소록도 가는 내내 최경숙 박사님의 사회로 각자 소록도를 가는데 대한 기대감과 소감에 대해 나누는
시간을 가졌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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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중 저의 시선을 끄는 분은 이원복선교사님이셨습니다.
방문자 중 연세가 제일 높기도 하셨지만 암말기의 거동조차도 많이 힘드신 몸으로 함께 동행하셨습니다.
하얗게 샌 머리가 너무 아름다우셨으며 웃는 모습이 참으로 고우신 분이셨습니다.
스스로의 몸도 가누기 힘드실건데 소록도 분들과 함께 하실려는 그 열정에 고개가 숙여졌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정말 많은 소감을 밝혔습니다.
이미 다녀오셨던 분들은 지금까지 얼마나 많은 은혜를 받았었는지에 대해 말씀하시고
새로 오신 분들은 기대 하셨습니다. (이날 새로 오신 분들은 저를 포함하여 총 8명이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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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순원 학생... 올해 고 3이 되는 학생인데 스스로 소록밀알회 공고를 보고 참여한 대단한 학생이었습니다.
학업의 이유로 교회조차도 가지 않는 많은 학생들에 비해 정말 아름다운 학생이었습니다.
참 대단하다 싶은 학생이었는데 이 학생은 마지막 소록도를 떠나는 시점에 대 히트를 칩니다...^^...
 
그렇게 소록도에 도착한 시각은 12시 20분쯤...
숙소로 가서 쉬라고 하시는데 소록도 분들은 3시 40분에 새벽예배를 드린다고 하셨습니다.
헉... 자라는 말인지 말라는 말인지...ㅡ.ㅡ;;;;
여자분들이라 그런지 1시 넘어서까지 씻으시느라 정신이 없었습니다. 저는 대충 이만 닦고 그냥 취침...
그러나 낯선 환경... 설레임으로 잠을 거의 자지 못하고 있는데 새벽 3시 어머님들은 모두 일어나서 세수하시느라
정신이 없어서 저도 덩달아 한숨도 못자고 겨우 비누로 세수만 하고 새벽예배를 드렸습니다.
 
조용이 앉아서 기도하시는 분들이 많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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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새벽에 성가대도 섰습니다. 매일 성가대가 선다고 합니다. 대단하신 분들이셨습니다.
 
그런데 제가 생각했던 한센인과는 많이 다른 모습이셨습니다. 그냥 이웃집 할머니 할아버지 같은...
다만 고생을 많이 하셔서 몸이 조금 힘드신 듯한 그런 모습....
가끔 손이나 발에 흉터가 계신 분도 있었지만 그 모습은 가끔 우리 주변에도 있는 화상환자 같은 그런 느낌이었습니다.
책으로, 매스컴으로 생각했던 끔찍한 모습은 없었습니다.
 
그렇게 조용히 예배가 끝나고 2부에는 소록밀알회 여러분들의 인사가 있었습니다.
모두들 나가서 찌라도의 하나님을 특송했습니다.  찌라도의 하나님... 그 때는 무슨말인지 잘 몰랐습니다.
차안에서 찌라도의 하나님을 만나라는 말에 약간 의아했습니다.
특송을 부르면서도 사실 크게 와 닿지는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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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경숙 박사님 사회로 이상길회장님, 최종관 전직회장님, 최병한 선교사님 등이 오랫동안 소록도를 방문하면서
벅찬 감동을 얘기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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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현진 목사님과 이지연 종양내과 과장님 부부, 최경숙 박사님의 특송도 있었습니다.
 
이 순서가 모두 끝나고  장인심 권사님의 간증시간이 있었습니다.
핑크색 점퍼와 빛나도록 하얀 머리카락... 동글동글 귀여운 얼굴...
빠르면서도 카랑카랑한 목소리... 허리가 아프셔서 잘 서 계시지도 못하면서도 그 기개만은 꺾이지 않는...
웃음이 아직도 16세 소녀같은 그런 분이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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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잣집 그것도 종갓집 1남 5녀 막내딸로 태어나서 온갖 사랑을 다 받고 사시다가 16세에 발병하셨다고 합니다.
정말 꽃다운 그 나이... 여기서 안 사실이지만 10대~20대에 발병하신 분들이 정말 많았습니다.
이전에는 한센병을 아주 극악한 병으로 봐서 발병 사실이 알려지면 집안이 망한다고 하며 쉬쉬하셨답니다.
아버님은 화병으로 돌아가시고 권사님도 죽을려고 하셨다가 먹은 약을 토하는 바람에 사셨다고 합니다.
 
지금 모습을 봐도 너무나도 이쁘고 귀여웠을 것 같은 16세 소녀에게는 너무 가혹한 형벌이었을 겁니다.
소록도에도 스스로 가겠다고 하셨답니다. 섬을 들어가는 도중 바다에 몸을 투신하실려고...
그렇게 소록도에 들어가서 매일매일 산에 올라가 울며 언제라도 시간이 되면 죽으리라는 맘으로 사셨답니다.
그러던 어느날 우연히 방문하게된 교회에서 설교가 자살을 하면 안된다는 말씀이셨답니다.
권사님의 맘을 크게 흔드는 말씀이셨답니다. 그래서 그때부터 지금까지 사셨답니다.
 
그 중간 중간 소록도에서 겪은 참혹한 일상은 여기에 다 기록하기도 힘듭니다.
지금은 아름다운 관광자원으로 개방된 중앙공원은 피로 땀으로 눈물로 강제 동원된 노역으로 만드셨고...
굶주림에 허덕이고 아픔에 허덕이고 고문에 허덕이고... 너무너무 힘들어서 자살을 하신 분도 많다고 하셨습니다.
 
남자에게는 강제 정관수술... 임신부에게는 강제 낙태... 어린 핏덩이 엄마는 억지로 그 자녀를 떼어 놓았다고 합니다.
그 분들에게는 오로지 하나님 밖에는 없었습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조금의 시간이라도 있으면 오로지 기도만이 전부이셨습니다.
그 분들의 상처입은 무릎이... 오그라든 손이... 오직 기도로만 위로받을 수 있었던 것 같았습니다.
 
대단한 믿음의 선배들이셨습니다. 정말 먹고 살기도 힘든 곳에서 그 분들의 손으로 예배당을 만들고...
100원 200원 모아서 해외 선교도 하시고... 새벽부터 밤까지 기도와 찬송이 끊이지 않는 대단하신 분들이셨습니다.
 
그저 교회만 왔다갔다 하는 지금의 기독교인들과는 차원이 다른 분들이셨습니다.
 
무엇보다도 감동이었던 것은 그 상처를 자신의 피맺힌 가슴으로 품어서 지금의 담담함과 웃음을 만드신 것이었습니다.
그 끔찍한 얘기도 담담히 하셨고 그 고통스러웠던 얘기도 담담히... 가끔 흥분된 목소리도 하셨지만
주님을 만나고 기도하던 얘기를 하실때는 천상의 얼굴로 기쁨이 가득하셨습니다.
 
한 시간여의 긴 간증이었지만... 잠 한숨 안자고도 전혀 졸립지 않았습니다.
목이 울컥했지만 오히려 누가 될까봐 울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교회를 나섰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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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낙 이른 시간에 새벽예배를 드리는 터라 1부, 2부, 간증시간까지 2시간 이상이 지났지만 아직도 밖은 어둡습니다.
아픔 속에 우뚝 서있는 교회의 모습이 참 가슴 아리게 다가왔습니다.
 
(제가 뒤에 앉은 관계로 전부 줌으로 당겨 찍다보니 화질이 좀 그렇습니다. 이해 바랍니다..ㅡ.ㅡ;;;)
 
------- 계속 ------
 

댓글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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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일현님의 댓글

김일현 작성일

정리 감사합니다. 그 때의 감동이 섬세하게 다가오는 것 같습니다.  샬롬^^ 김일현